
파업으로 인해 개발 프로세스가 정상적으로 진행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던전앤파이터는 약속대로 퍼스트 서버에 밸런스 패치를 선보였다.
기존에 있던 탈리스만과 룬을 활용한 '스킬 커스터마이징' 콘텐츠의 리뉴얼에 해당하는 'VP(스킬 개화)'를 제외한다면 근 1년 만에 캐릭터의 성능을 직접적으로 손보는 밸런스 패치인 관계로 많은 모험가들은 기대반 걱정반으로 그 결과를 기다렸지만 그 결과는 처참했다.
여전히 스킬이나 아이템에 부여된 기능성(유틸리티)의 가치를 지나칠 정도로 높게 책정하여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개선을 받지 못하는 사례들이 속출했고, 명확한 기준이나 방향성 없이 수치 조정 위주로만 굴러가는 딸깍식 밸패 기조에는 변함이 없었으며 일부 캐릭터의 VP 추가 개선사항을 보면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개악에 가까운 변경점까지 확인되고 있었다.
■ '섀도우댄서'를 통해 보는 VP 개?선
이번 퍼스트 서버 패치노트에서 가장 먼저 나온 내용은 '스킬 개화 개선'이었다.
개선이라 함은 사전적인 의미에서 부족하거나 잘못된 점을 고쳐 더 좋게 만드는 것을 뜻하는데 실제로 아무런 페널티 없이 자동 회수, 무딜레이 캐치, 5초 이내 재투척 기능을 추가하여 호평받은 '여성 레인저'의 '릴리스 블레이드(더블 건호크 VP 2)'나 지나치게 쿨타임이 짧아 이론상의 실전딜을 제대로 뽑아내기 힘든 동시 시전 날벼락부의 단점을 고친 '무녀'의 '사해용왕격(용의 격노 VP 1)'처럼 진짜로 개선된 사례가 없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변경된 사례가 훨씬 많았다.
가장 대표적인 캐릭터가 '섀도우댄서'다. 원래부터 섀도우댄서는 대부분의 스킬들이 타점을 맞추기 힘들거나 스킬 적중 직후 상당한 수준의 딜레이가 걸리고 위험한 위치에서 튀어나오는 등 높은 리스크를 동반하고 있어 스킬의 구조를 바꿔 이를 완화하는 (구)스킬 커스터마이징의 의존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었는데 6월에 적용된 VP 업데이트는 스킬 커스터마이징에서 전혀 나아진 부분이 없었고 이번 추가 개선안도 무의미한 내용 투성이었다.
퍼스트 서버에서 직접 촬영한 섀도우댄서 'VP 개선' 관련 치명적인 버그 모음
집중(코버트 액션 VP 1)의 '호밍 기능 추가'의 경우 이미 바닐라 상태에서도 2차 각성기 체인 리액션의 '사슬 단검 투척'이나 진각성 패시브로 강화된 '심장 찌르기'를 통해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유틸리티라서 그 중요도와 필요성이 낮음에도 굳이 개선안이라고 들어갔고 버스트 스팅(섀도우 스팅 VP1)의 체인 리액션 연동 기능은 사실상 체인 리액션의 가동율이 올라가면 VP 낭비밖에 되지 않는 상황이다.
가장 심각한 레이크(섀도우 스팅 VP2)는 체인 리액션의 피니시가 원본에 종속되어 있는 구조를 전혀 의식하지 않은 것인지 지속시간만 늘려주는 기능을 추가한 탓에 이미 체인 리액션의 쿨이 돌아도 지속시간이 계속 늘어나면서 체인 리액션의 재발동이 늘어지는 구조를 만들어 놓아 결과적으로 스킬 개화를 찍으면 도리어 체인 리액션 피니시의 회전율지는 결과를 낳았다.
심지어 객체 프로그래밍에서도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는데 단검 투척 스킬의 오브젝트를 그대로 재활용한 헌드레드 4(파이널 디스트럭션 VP2)는 헌드레드 4를 통해 설치한 단검과 본체의 사이에 적을 놓여 있을 경우 단검 투척의 호밍 기능에 혼선을 주는 것인지 스킬 발동 자체를 불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치명적인 버그가 있으며, 특정 스킬 사용 중에 동시 시전 형태로 발동하면 그대로 캐릭터가 굳어버리거나 스킬 판정 자체를 강제 백어택으로 만드는 일부 VP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이슈가 발견되어 판정에 굉장히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섀도우댄서 이용자들에게 지탄을 받고 있다.
■ 무성의 그 자체인 캐릭터 밸런스

이번에도 숫자놀음이라는 기조에는 변화가 없었다.
12명의 캐릭터가 조정 대상이었지만 구조적으로 개선되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으며 약 5%에서 10%가량 피해량이 늘어나는 것에 그쳤다.
가령 소드마스터는 중천 시즌이 도입되는 과정에서 도 카테고리 이외의 무기가 사실상 사용불가 판정을 받은 상태인데 이에 따른 적절한 재조정 없이 이번 밸런스 패치를 일괄 상향으로만 처리한 탓에 도와 다른 무기의 격차만 더욱 벌어지고 말았으며, 이번에 버프를 받은 직업들 중에는 실전 운용 난이도 문제로 인해 숙련자들만 남아있어 진작에 지표가 오염된 캐릭터가 여럿 포함되어 있어 단순한 접근 방식으로 말미암아 버프된 이유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이용자들의 불만이 적잖게 들려오고 있다.
그나마 구체적인 조정안이 적혀 있는 버퍼 캐릭터들의 경우에도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포(각성기 버프) 타이밍에 맞춰 각몰(각성기 몰빵) 세팅을 채용한 일부 캐릭터의 주요 스킬을 한 사이클 내에 두 번 넣는 것이 용이하게끔 바꾼 것에 가깝다.
사실상 특정 캐릭터를 깊게 파고 들어가서 구조적인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하고 이를 고치는 형태로 이뤄지는 '정석적인 캐릭터 밸런스 개편'은 없었던 것이나 다름없다.
■ 진짜로 저점방어가 필요했던 세트 장비는 무엇인가?
백해 시즌에 처음 등장한 보조 특성(장비 특성) 시스템의 도입 이래로 '특수 오브젝트'는 꾸준히 상향을 받으면서 이제는 대부분의 계산식을 적용받는 유의미한 데미지 옵션으로 자리매김하게 됐지만, 여전히 쿨타임 감소나 구간 스킬 피해 증가와 같이 미적용되는 옵션들은 존재했고 그로 인해 레거시든 세트든 오브젝트 관련 옵션은 최종 데미지를 비롯한 장비 자체의 포텐셜을 깎아먹는 애물단지로 취급되는 신세를 피할 수 없었다.
때문에 이번 퍼스트 서버 아이템 개편에서는 전체 세트의 성능을 상향평준화했는데 이 과정에서 오브젝트 딜링 세트 정확히는 마력셋의 성능이 지나치게 강해지는 결과가 나왔다. 본래 '마력의 영역' 세트는 캐릭터에 부착된 상태여야만 최고점이 나온다는 제한(하이리스크) 때문에 높은 수준의 DPS(하이리턴)가 허용되던 장비였는데 이제는 부착 상태에서도 원거리 반응형 공격 기믹이 추가되면서 그냥 대놓고 강한 장비가 되어버렸다.

반응형 공격 기믹이 추가되면서 원거리 딜러들도 마력셋을 쓰기 좋은 환경이 됐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마력의 영역' 세트보다 오히려 저점방어가 절실했던 세트 장비 '한계를 넘어선 에너지'가 이미 존재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한계를 넘어선 에너지'는 공식 방송에서 박종민 디렉터의 입을 빌어 문제가 있어 개선이 시급하다는 언급이 나왔을 정도로 모험가들 사이에서는 인식이 굉장히 나쁜 세트인데 결과적으로 이번 퍼스트 서버 밸런스 패치를 통해 바뀐 것은 백해 시즌 각몰 세팅에 들어가던 전용 융합석을 벗고 중천 시즌에 새로 도입된 베누스/나벨 융합석을 착용할 수 있도록 각성기 쿨타임 감소 수치가 조금 상향된 게 전부다.

추가된 옵션들의 실질적인 가동율은 50퍼센트도 되지 않아 사실상 무의미한 말장난에 가깝다
만약 기획 단계에서 발견되지 않았더라도 한번이라도 테스트를 해봤다면 분명 파악되었어야 할 문제였다
최종 데미지 증가의 상향 대신 들어온 쿨타임 200초짜리 특수 오브젝트 옵션이나 각성기 사용시 30초간 지속되는 보호막 부여도 문제가 많은데 해당 세팅 착용시 진각성기의 쿨타임이 보통 100초 내외가 되는 것을 감안하면 기껏 붙여준 특수 오브젝트 옵션의 가동률은 그야말로 형편없는 수준이며, 2차 각성기의 기본 쿨타임이 60초로 설정된 여성 스트리트파이터의 '독문무공'처럼 아주 특별한 케이스가 아닌 경우 보호막 생성 및 중첩 효과도 제대로 활용하기 어렵다.
기껏 새로 붙여놓은 옵션들이 세트의 설계 이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만들어졌다는 정황증거들이 널려있다 보니 당연히 전반적인 밸런스 패치의 신뢰도도 떨어질 수 밖에 없다.
■ 총평
지난 6월에 진행한 '스킬 개화' 업데이트는 67개에 달하는 모든 캐릭터의 스킬 커스터마이징 시스템 전체를 손보는 유례 없는 리소스가 필요한 작업이었고, 그로 인한 영향력이나 지표가 데이터로 충분히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되는 밸런스 패치에 어려움이 따르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라이브 서비스 게임 중에서 유독 캐릭터/아이템 밸런스 조정의 주기가 긴 탓에 대형 이벤트로까지 취급되는 던전앤파이터의 특수성을 고려했을 때 이번에 공개된 퍼스트 서버의 패치노트는 1년 만에 선보인 것치고 많은 모험가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줬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분명 정상적인 기획과 개발이 진행되기 어려운 환경에 놓여있다고는 하지만 자사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결여된 인상을 주는 결과물을 내놓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이었을까? 상기한 내용들은 가장 심각한 부분들만을 깊게 파고든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과연 라이브 서버로 넘어오기 전에 얼마나 고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신호현 기자 hatchet@chosun.com] [gamecho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