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양권에서 통용되는 격언 중에 '역사는 반복된다'는 문장이 있다. 이미 한번 벌어진 일은 그 결과가 희극이든 비극이든 분명히 실현이 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기 때문에 그 인과관계를 명확히 알고 있더라도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던전앤파이터에서는 이와 같은 선례들이 이미 존재한다. 게임 내에서 운영자가 자신의 권한을 남용하여 아이템을 무단으로 생성 및 판매한 2007년 '다크서클 사건'은 2020년 '궁뎅이맨 사건'과 2022년 '글뎅이맨 사건'으로 2번이나 되풀이됐고 약 일주일 전에 발생한 '2025년 던전앤파이터 블랙리스트 시스템 악용' 사건도 발단은 다를지 몰라도 시스템의 허점을 악용한다는 전개는 이전에 발생했던 사건과 동일한 양상을 보인다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이번에 벌어진 사건은 '본인이 피해자라고 사건을 공론화한 이용자(편의상 A로 호칭)'와 '아이템 거래 과정에서 입장 차이로 인해 충돌한 또다른 이용자(편의상 B로 호칭)'의 이용자 대 이용자의 분쟁으로 시작됐다.
A는 본인이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아바타를 처분하기 위해 서버 전체에 채팅을 날릴 수 있는 소모품 '하트비트 메가폰'을 사용하여 판매 의사를 날렸고 이것에 응한 B와 가격 협상을 하다가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사이가 틀어진 것이 발단인데 채팅으로 언쟁이 오가다가 A측에서는 의도적으로 B의 채팅을 무시하기 시작했고 약 2시간 뒤 거래를 시도하기 위해 이름, 레벨, 서버 정보가 노출된 캐릭터가 100명 이상의 계정에게 블랙리스트로 등록되어 던전앤파이터의 패널티 시스템인 '마을의 말썽쟁이'로 지정당했다는 것이 A의 주장이었다.

사실 2020년에도 비슷한 사건은 있었다. 파티장이 일정 금액을 미리 지불받고 스펙이 모자란 파티원들 대신 던전 클리어를 하는 '쩔'을 진행하던 도중 파티장 'C'는 파티원 'D'가 무분별하게 내뱉는 욕설에 대해 계속 욕설을 반복할 경우 쩔을 중단할 것이라고 대응했고 이에 D는 사과 멘트를 남기면서 그대로 분쟁이 종료되는 듯 했으나 D가 앙심을 품고 '하트비트 메가폰'으로 C에 대한 음해를 목적으로 하는 허위사실 유포를 반복했고 아무런 관계도 없는 깡계정으로 블랙리스트 등록이 중첩되어 결국 C는 '마을의 말성쟁이'가 되고 말았다.
2020년 사건의 경우 당시 이용자 D의 캐릭터 이름에서 유래한 '라이오닐 사건'으로 기억되며 이용자들 사이에서 종종 구설에 오르고 있는데 그래도 당시에는 이용자 C가 이용자 문의를 통해 항의하자 던전앤파이터 운영진이 '비정상적인 블랙리스트 등록 횟수를 초기화'하고 D에게는 '불량 이용자 등록과 이를 공지로 알리는 합당한 제재 조치'를 내려 그나마 다행스럽게 넘어갔지만 이번에 벌어진 사건은 조치의 방향성이 이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A의 주장에 따르면 게임사 측에서 연락이 와서는 '중립을 표방하며 해당 분쟁을 원만하게 종결하지 않을 경우 A와 B 모두에게 제재조치가 이뤄질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2020년 '라이오닐 사건' |
- 폭풍의 항로 버스 파티를 운영하는 이용자 C와 금액을 지불하는 이용자 D의 분쟁 발생 - D가 다른 파티원을 대상으로 하는 패드립과 같은 강도 높은 욕설을 하여 C가 제지함 - 파티 운영 종료 후 D가 C에 대한 음해성 허위사실 유포 및 깡계정을 활용한 블랙리스트 등록 - C가 시스템 패널티로 인해 정상적인 게임 진행이 불가능해져 게임사 측에 문의 접수 - 게임사 측에서 비정상적인 블랙리스트 등록 시도를 확인 - C의 상태 정상화 및 D에 대한 제재 조치 ※ 이상 이용자 C의 주장 및 공론화 게시물을 통해 확인된 내용 |
2025년 '블랙리스트 시스템 악용 사건' |
- 이용자 A와 이용자 B가 아이템 거래와 관련하여 시세 차익에 대한 견해로 분쟁 발생 - 언쟁 도중 A는 B의 메시지를 무시하기 시작함 - 분쟁 발생 당일 약 2시간만에 블랙리스트 등록으로 인한 시스템 패널티 적용됨 - A는 짧은 시간 안에 100명의 이용자로부터 블랙리스트로 등록되는 것이 정상적인 절차가 아님을 의심 - A는 게임사 측에 문의 접수 - 게임사 측에서는 양측의 분쟁에 개입할 수 없으며 멈추지 않을 경우 A와 B 모두 제재될 것이라고 연락 - A는 비정상적으로 블랙리스트 등록된 사실이 확인되면 패널티 해제가 가능한지 문의함 - 게임사 측에서는 불가하며 자연스럽게 풀리는 시일을 기다려달라고 답변 ※ 이상 이용자 A의 주장 및 공론화 게시물을 통해 확인된 내용 |
하지만 엔드 콘텐츠 대부분을 파티 플레이로만 진행할 수 있는 커뮤니티 게임의 양상을 띠고 있는 던전앤파이터에서 블랙리스트로 인한 시스템 패널티가 악용되기 쉽다는 것 또한 이용자 입장에서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사실은 아니다.
특히 3년 전 공론화된 '라이오닐 사건'이라는 선례를 겪었다면 적어도 블랙리스트를 등록하는 과정이 '매우 간단하게 이뤄지는 지독한 행위'가 되지 않도록 하는 예방책이 필요했다.
예를 들어 액티브 유저의 척도가 되는 '명성*이나 모험단 레벨**으로 커트라인'을 걸어 단순히 블랙리스트 등록을 위해 무분별하게 운용되는 금방 생성한 깡계정의 영향력을 줄이거나, 무분별한 여론 호도가 발생하지 않도록 '채팅 및 파티/공격대 콘텐츠에 로그가 남아 있어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있는 이들'만 블랙리스트 등록을 가능하게 하는 예방책을 마련하는 방안이 3년 안에 구현되는 것조차 불가능한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을까?
*장비 및 육성도를 수치화한 내용, 중천 시즌 기준으로는 점핑 직후를 기준으로 3만 내외
**계정 내 캐릭터 레벨 및 숙련도를 기준으로 책정된 수치


일러스트레이터 족제비와토끼(족토) 또한 인게임 플레이와 관련된 부정 이슈가 일절 없었음에도
조직적인 블랙리스트 등록 움직임으로 인해 패널티를 받는 사례가 있었다
[신호현 기자 hatchet@chosun.com] [gamecho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