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았으면 범인이고, 몰랐으면 무능이다"
던전앤파이터의 6월 대규모 업데이트에서 신규 클래스 2종 추가와 함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스킬 개화(VP)' 패치를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 문장이다.
'크로니클 아이템'과 '룬/탈리스만'의 계보를 잇는 스킬 개조 시스템 'VP'는 작년 던파 페스티벌 당시 2025 시즌 로드맵 발표단계부터 많은 모험감들의 이목이 집중되던 콘텐츠였다.
근본적으로 구조 개선이 필요한 스킬들이 많아서 특정 탈리스만 착용이 강제되는 캐릭터들에게는 선택권을 무려 2가지 더 늘려주고, 탈리스만을 착용할 경우 오히려 스킬의 형태가 개악되는 캐릭터들에게는 시스템을 전면 리워크하겠다고 하니, 당분간 캐릭터 밸런스를 손대지 못하는 상황에 오더라도 개발진의 노고를 이해하겠다는 의견을 내비치는 모험가가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업데이트 당일 VP 시스템을 접하고 아쉬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애초에 기대를 하지 말걸, 처음부터 아무 것도 기대를 하지 않았다면 배신당할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이번 VP 업데이트의 방향성은 명확하다. 이전의 룬/탈리스만은 구조를 바꾸는 동시에 탈리스만을 착용하면 쿨타임이 줄어들거나 줄 수 있는 데미지가 늘어나서 실질적으로 같은 시간 대비 화력이 증강되는 효과를 포함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스킬 개조'보다는 '스킬 강화'에 가까웠고, 이번 VP는 스킬의 형태가 바뀌더라도 실질적으로 가할 수 있는 화력의 기대값은 기존 스킬과 동등하게 맞춰놓으면서 밸런스를 크게 해치지 않으려 했다.
심지어 스킬별로 선택 가능한 VP를 2개씩 마련하여 가짓수 또한 크게 늘려 다양한 플레이 스타일을 구현하고자 한 점은 높게 살 만한 부분이다.

실제로 필자의 주력 캐릭터 중 하나인 '요원'은 양쪽 VP의 성능이 모두 우수하고
각각 '기존의 플레이 방식'과 '다른 플레이 방식'을 개성 있게 살릴 수 있어서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각각 '기존의 플레이 방식'과 '다른 플레이 방식'을 개성 있게 살릴 수 있어서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VP 시스템 업데이트가 완전히 실패한 콘텐츠라고 보기는 어렵다. 업데이트 당일 추가된 패러메딕, 키메라를 포함하여 던전앤파이터에서 플레이 가능한 클래스의 수는 69개로 어마어마한 숫자를 자랑하고 있으며, 모든 캐릭터의 레벨 35에서 80구간의 스킬 전부를 건드리는 VP 시스템에 대해 처음부터 완벽한 퀄리티나 밸런싱을 제공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그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부분을 테스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퍼스트 서버'고 이미 수많은 클래스의 내로라 하는 고수들이 직접 플레이하고 아쉽다는 피드백을 전달했지만, 끝내 라이브 서버 업데이트 당일까지 일절 반영되지 않고 조삼모사식으로 무언가를 주는 듯한 생색내기 무브먼트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역시 가장 큰 불만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이러한 기조에 의해 잃은 것이 더 큰 캐릭터, 구체적으로는 특히 버스트 딜링보다는 지속적인 화력투사가 중요한 클래스다. 대표적인 예로는 남성 스트리트파이터, 소환사, 엘레멘탈 바머가 있다.

던파조선에 올라온 이용자 '깅가남'의 투고 게시물
개발진이 VP 시스템 샘플로 올려뒀던 만천화우 VP 2번을 대차게 까고 있다
사실 던전앤파이터의 밸런싱 구조에는 이전부터 유지되는 한가지 틀이 있다. 무언가를 받을때 무언가를 반드시 토해내도록 하여 등가교환을 만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A와 B라는 동등한 레벨과 레어리티의 세트 장비가 있는 상황에서 A는 평범하고 균등하게 모든 능력치를 제공하는 표준 장비인데 반해 B가 상시 슈퍼아머를 제공한다고 하면 반드시 B에서 화력 증강과 관련된 수치를 깎아내어 밸런싱을 하는 방식이 대표적인 사례인데 문제가 있다면 이 등가교환이 철저하게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제로섬을 이루도록 설계되지 않고 유틸리티를 제공하는 쪽에서 화력 증강과 관련되어 잃는 것이 더욱 커서 결국엔 아무도 B를 이용하지 않게 된다는 부분이다.
최근의 던파에서 슈퍼아머, 자동회복, 데미지 감소와 같은 유틸리티들은 있으면 편하지만 없어도 크게 상관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직접적으로 화력에 영향을 주는 피해량 증가, 쿨타임 감소, 속도 증가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가치를 올려치기 해버리는 기조를 만들어 놓았으니 당연한 것처럼 순간적으로 딜을 압축할 수 있거나 특수한 유틸리티를 제공하는 VP에 대해서는 동시 시전이 가능한 스킬들의 평상시 위력까지 덜어내어 버린 것이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던파IP 마이너 갤러리에서 개념글로 올라간 남스파 VP 관련 게시물
언뜻 보면 남스파를 잘 아는 사람이 VP 작업을 해서 칭찬한다고 오해할 수 있지만 고도의 돌려까기를 시전하고 있다
때문에 남스파 이용자들은 더티 배럴과 만천화우를 시전하는 동시에 주력 기본기인 독병 투척과 바늘 투척을 수차례 사용한 것처럼 동시 시전할 수 있는 2번 VP에 대해 학을 뗴고 싫다는 여론을 보여주고 있다.
텍스트 플레이버를 읽은 남스파 이용자들은 동시 사용 형태로 나가는 독병과 바늘의 경우 단숨에 폭딜을 넣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해당 방법으로 사용할 때 한정으로 화력을 줄이는 페널티를 준 것이 아닐까 희망회로를 돌렸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평상시 주력으로 쓰는 독병과 바늘을 부러뜨리고 '딴거 쓰렴'을 시전한 것이다.
남스파를 안하던 사람들이야 까다로운 룰 브레이크 캔슬 테크닉의 빈도를 줄이면서 저점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 같아 좋다고들 하지만 그거보다 더 큰 문제인 주력기를 넣기 전에 최소 3개 이상의 상태이상을 걸어두는 셋업무브를 요구하는 조건부나 중구난방인 스킬 타점에 대한 개선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티 배럴의 투척 속도를 올려주는 것을 추가 개선사항을 적어둔 것을 보고 한 커뮤니티 이용자는 "명왕(남스파)에 대해 정말로 잘 아는 사람이 VP를 작업한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효과적으로 캐릭터를 망쳐서 이용자를 불편하게 만들 수가 없다"라고 극찬을 남겼을 정도다.

40초짜리 븜끼얏호우로 무적을 챙긴 다음에는 뭐가 남냐고?
번거롭게 다시 포지션을 잡고 딜을 하는 소환수가 남는다
2번 VP가 소환수 크기 증가로 방생딜 측면에서 압도적으로 편의성이 좋음을 감안한다면...
소환사의 경우 대부분의 1번 VP는 기존 룬/탈리스만 옵션을 그대로 계승하거나 살짝 조정을 가하는 상황 속에서 오히려 더욱 개악된 옵션을 받은 상황이다.
정령왕 에체베리아의 개체 수를 늘려주어 오라 중첩과 효과를 받고 방생딜 지분을 크게 끌어올리는 것은 물론 이클립스 하이브를 통한 추가 조작으로 인해 딜로스가 생기는 것을 최소화하던 '스피릿 디비전'과 같은 우수한 탈리스만들이 단순히 분신이 스킬을 대신 시전해주는 VP로 바뀌면서 결과적으로 너프를 먹게 됐다.
심지어 같은 주력 소환수 라인에 있는 타우킹 쿠루타는 뜬금없이 교감 추가 조작 패턴이 짧고 굵게 도끼로 내려치는 것이 아니라 소환사를 태우고 돌진하는 스킬이 되면서 도리어 방생딜 지분이 떨어지게 됐다. 개발진 입장에서는 '40초짜리 쿨타임의 무적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잃는 것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2개의 스킬을 하나로 압축하는 '납도'와 강제 연계 스킬을 덕지덕지 붙이고 나왔던 블레이드는
구조적으로 항상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던전앤파이터와 같은 템포가 빠른 액션 게임에서는 암만 강력하더라도 채널링이 길거나 딜레이가 심해서 딜타임을 길게 가져가는 스킬은 당연히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
모든 스킬이 쉽고 빠르면서 강하기까지 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것을 모두 알다 보니 다소 복잡하고 까다로운 컨트롤을 요구하거나 약간의 딜을 희생하더라도 많은 모험가들은 스킬을 빠르게 욱여넣는 형태의 스킬 커스터마이징을 선호했고 VP 시스템 업데이트 또한 이러한 가려운 부분들을 최대한 긁어주는 쪽으로 개발이 진행된 것은 분명하다. 실제로 필자가 주력으로 키우던 마창사, 총검사 계통 클래스들은 VP를 통해 대부분 좋은 방향의 개선이 이뤄졌고 전반적인 만족도도 높다.
하지만 그것이 다른 직업 이용자들의 피드백을 깡그리 무시한 것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이전부터 꾸준히 나오던 이야기지만 퍼스트 서버에서 라이브 서버로 넘어오기까지 진행되는 테스트 기간은 고작 2주로 너무나 짧으며 그 사이에 유의미한 이용자 데이터와 피드백을 수집하여 개선작업까지 진행하기엔 시간이 상당히 촉박하다.
아마 당분간은 VP 업데이트를 빌미로 하여 직접적으로 캐릭터 밸런스를 건드리는 작업이 진행되지 않을 것이 뻔할 뻔자인데 영 좋지 못한 VP를 받은 캐릭터에 애정을 가지고 있던 모험가들이 과연 끝까지 버틸지, 혹은 여름 프로모션 이벤트로 사정이 훨씬 나은 캐릭터를 선택하여 점핑을 뛰고 또 다시 '종말의 숭배자'에서 언제 끝날지 모를 공회전을 실시할지 그 선택이 굉장히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레바의 던파만화 '명왕은 못말려' 11화의 한 장면
참 얄궃게도 만화의 주인공이 남스파다
[신호현 기자 hatchet@chosun.com] [gamecho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