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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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2021-01-16 14:47 | 조회 : 2340 / 추천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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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스페인어로만 생활이 가능할까?.avi![]() ‘평화의 소녀상’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세계 ‘위안부’ 기림일을 맞아 서울의 한 시내버스 회사가 자비로 버스 5대 안에 소녀상을 설치하자, 일본 정부는 양국 간 미래를 발전시키려는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고 즉각 반발했다. ‘소녀상’ 건립운동이 유통회사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충남 홍성의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에서 지역 국회의원은 ‘평화의 소녀상 때문에 사드가 잠실눈썹문신필요하고 이걸 항의하면 북한 사람이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한편 한 정당의 충남도당 전 대변인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딸이나 손녀가 자기 어머니나 할머니가 강간당한 사실을 동네에 대자보 붙여놓고 역사를 기억하자고 하는 꼴”이라 주장하며 소녀상 건립운동을 비난하기도 했다.얼핏 보면 상반된 입장에서 모두 다른 이야기를 하는 듯하다. 그러나 민족과 국가는 남성(성)과 동일시되고 여성은 그저 보호의 수동적 대상일 뿐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같은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다. 보호받지 못하는 여성의 존재가 폭로될 때 남성 스스로를 보호할 오렌지나무만한 자격을 갖춘 주체로 상정하는 담론의 허구가 깨진다. 특히 이(異)민족에 의해 ‘몸 버린 여성’은 자국 남성의 무능력함을 내보험다보여확증할 뿐 아니라 국가의 무기력함을 입증하는 살아있는 증거가 되므로 ‘민족의 수치’라는 명목으로 내보험찾기감추어져야 한다. 역으로 강한 민족성-남성성-을 과시하기 위해 다른 민족 여성은 집단 폭력의 대상이 된다. 전시 성폭력은 그렇게 장려되고 정당화되어 왔다. 이러한 내보험찾아줌서사에 ‘소녀’는 없다. 민족으로 등치되는 남성들 간 경쟁논리만 있을 뿐이며, 여성은 그저 남성성 구축의 도구에 불과하다.그렇다면 소녀상을 단순히 남성중심적 민족주의의 발로 혹은 도구로 보아야만 하는가. 소녀상은 2011년 12월14일 1000차 수요시위를 기념해 서울의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졌다. 일본군 ‘위안부’ 운동의 오랜 염원 중 하나였던 기림비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되었고, ‘평화비’로 이름 붙여졌다. 애당초 비석의 형태로 제작될 예정이었으나, 할머니들의 상황과 내용을 표현하기에 부족하다고 느낀 작가들의 적극적 제안으로 조각으로 형상화되었다.이름 없이 사라져간 여성들의 삶이 무주스키강습소녀의 모습으로 형상을 입자, 예상치 못한 일들이 발생했다. 벗겨진 발에 양말이 신겨지고, 뜯긴 머리에는 모자가 씌워지며, 숨죽인 눈물로 들썩였을 어깨에는 손뜨개질한 목도리가 둘러진다. 소녀상 주변에는 꽃과 촛불, 인형 등 각종 추모의 상징물로 가득하다. 타자의 고통에 다가감으로써 꼭꼭 숨겨왔던 자신의 경험과 마주하며, 다시 자아를 통과해 타자의 내보험다보여아픔에 공감하는 내보험다보여이들이 소녀상을 어루만지고 있는 것이다. 10~20대 여성들이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고 수요시위에 대거 홍보마케팅참석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근래 한국에 거세게 불어닥친 ‘페미니즘 리부트(reboot)’ 열풍을 배경으로 개인적이고 사소한 일로 여겨졌던 여성에 대한 폭력이 다시 공론장에 부상하게 되자, 많은 여성들이 시공간을 넘어 광고마케팅공유된 경험으로 새로운 ‘피해자’ 연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열린 당뇨텍스트로서 재현물은 관람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를 구축한다. 포스트식민 메모리의 상징적 재현물로서 소녀상은, 이제 작가들의 의도, 구현되고 있는 분명한 메시지를 넘어 의미를 너르게 확장해 가고 있는 것이다. 사라진 유령 혹은 예외적 개인이 아닌 집단적 여성 주체로서 위안부의 존재를 형상화한 소녀상은, 이제 역사 속에 숨겨진 수많은 여성들의 고통스러운 경험들을 관통하는 젠더 부정의의 로고송표상이며, 고통이 만들어지는 구조와 역사에 보다 깊은 관심과 저항을 요청하는 상징물로 봐야 한다. ‘늙지도 죽지도 않는 역사의 산증인’은 매일매일 우리에게, 지금도 지워지고 있는 여성의 존재에 대해 환기하며 변화를 위한 책임의 공유를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이런 상황에 무지한 아베 정권의 소녀상 철거 요구는 폭력의 사실과 피해자의 분양광고경험은 물론 여성의 존재 자체를 부인(否認)하는 ‘가해자-남성’의 전형적 행위로 비쳐 극렬한 저항을 촉발하게 마련이다. 여고생들에 의해 주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전국 고등학교 작은 소녀상 100개 건립 운동’은 바로 이러한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마지막으로 소녀상에 관심 있는 당신에게 묻는다. 여러 피해자들의 생애가 응축된 소녀상을 한 명 한 명 구체적인 여성들의 삶과 연결시키지 못한다면, 피해자들의 경험을 들을 귀가 없고 아픈 내면을 들여다볼 눈이 없다면, 이들의 아픔을 경유해 자신의 가해자성을 성찰하고 변화할 마음이 없다면, 소녀상은 그저 일시적 이벤트로 소비되는 반일 민족주의 고지혈증감정의 촉매제에 불과하게 된다. 소녀상 훼손의 책임은 바로 젠더 부정의에 무감한 당신에게 있다.경향신문 [오늘의 인기뉴스]인혁당 피해자, 대법·국정원 탓 40여년 고통···문 정부가 풀까 [칼럼] ‘갓건배’와 ‘페미니스트 선생님’[알아보니] ‘내로남불’은 어쩌다 정치용어가 되었나?카카오뱅크서 가족이 몰래 대출···비대면 인증 허점 노출아리아나 그란데 첫 내한…한국인은 호구였다?▶ 경향신문 역류성식도염치료SNS [트위터] [페이스북]▶ [인기 무료만화 보기]▶ [카카오 친구맺기]ⓒ경향신문(www.khan.c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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