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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ro | 날짜 : 2015-07-22 03:04 | 조회 : 874 / 추천 : 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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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손풀기'그림자' 하나가 죽었다. 사형장은 시끄럽고 후덥지근했다. 사막의 열기가 물을 머금었다. 오아시스의 수분과는 달랐 다. 우기가 오려는 것 같았다. 그의 일생 중 가장 시끄러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죽은 '그림자'가 몇년을 살았는지, 심지어 남자인지 여자인지 같은 연대 에 묶여있던 나조차도 모른다. 그렇지만 일생 중 가장 시끄러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그래 서인지 '그림자'는 쓸데없는 말을 했다. "어둠에......숙명이니, 운명이니, 거창한 소리로...달맞이 꽃...말하지도 않았다. 우리의 손...알고 있다. 어둠에 숨은 우리가 마지막까지 지켜보겠다." 소리는 멀고 작았다. 그의 작은 입이 움직이는 순간만큼은 한여름의 열기조차 얼릴 듯이 조용했다. 침묵은 계속되었다. '그림자'의 목이 떨어질 때 까지. 광기에 찬 관중들 사이를 비집고 나오면서 나는 이곳에 괜히 왔다는 생각을 했다. 이 시간이면 칸나가 파는 수제 빵과 우유를 사서 은신처로 돌아가고도 남았을 것이다. 은신처로 돌아와 쪽지를 남겼다. 태양이 떴음. 지워진 그림자는 수다쟁이의 것. 빵과 우유를 먹었다. 오늘은 칸나의 빵이 조금 퍽퍽했다. *** 잘 꾸지 않던 꿈을 꾸었다. 꿈은 기억 저편에서 억지로 악몽을 끌고 왔다. 나는 이름모를 남자랑 교접하고 있었다. 배에 털이 약간 있는 남자였다. 이제는 연기가 되어버린 쾌락 너머에서 그 남자의 씨앗을 받았다. 곧 남자는 돌아갔고, 나는 덥고 좁은 방에서 나왔다. 사창가는 더러웠다. 남자들은 여자에 대해 꽤나 향기로운 망상을 하고 있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었다. 그녀는 우리가 향기가 나는 이유는 얼마 전에 보따리상에게서 산 싸구려 향수 때문인데, 하고 철없게 웃었다. 나는 웃는 법을 몰라서, 그냥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얼마 후 흥분에 못이긴 남자에게 목졸려 죽었다. 나는 향수를 바르지 않았다. 내 몸에서 냄새가 나는것이 싫었다. 나를 거쳐간 남자들에게서, 내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저 그들은 흘러가는 것들이다. 그들에게, 내가 그렇듯이. 사창가의 여자들은 존재가 인정될 수 없었다. 그들에게 창녀는 없어야 할 존재였다. 언젠가 후줄근한 로브를 쓴 남자가 왔다. 모자를 눈 밑까지 눌러 쓴 그는 제일 어린 여자를 찾았다. 나는 초경이 지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남자에게 간택받을 수 있었다. 후줄근한 차림새와는 다르게 그의 몸짓은 단정하고 군더더기가 없었다. 그는 내 옷을 벗기지 않았다. 주어진 2시간의 시간 안에서 그는 내게 엉뚱한 제안을 했다. "사람을 죽여본 적이 있나?" 있을 리가. 그는 쉽다고 했다. 이걸로 목 한가운데를 있는힘껏 찔러넣으면 된다고 했다. 일주일 후에 자신이 데려오는 남자를 붙여줄 테니, 교접 중에 이것을 찔러넣으라고 했다. 손바닥 크기가 채 안되는 작은 은장도였다. 그는 요금의 다섯배에 달하는 돈을 줬다. 다시 모자를 뒤집어 쓴 남자가 말했다. "너는 향수를 뿌리지 않는군." 그의 말대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어려운 것은 내 머릿속이었다. 사람을 죽임으로서, 나의 죽음이 확연해졌다. 나도 이렇게 순식간에 죽을 수 있겠구나. 머릿속에 악마가 떠들었다. 너도 곧 죽을거야, 너도 곧 죽을거야, 너도 곧 죽을거야, 목에서 피를 쏟으면서. 제국의 헌병대에 끌려갔으나 보름이 채 되지 않아서 풀려나왔다. 나는 사창가로 돌아가지 못했다. 대신 마을 사람들에게 직접 돈을 받고 봄을 팔았다. 일곱 평 남짓한 단칸방은 언제나 훈기로 가득 차 있었다. 사창가 여자들이 떼로 몰려와 돌을 던졌다. 은장도를 휘두르고 던지고 하니 그들은 금방 물러갔다. 교접을 하다가 몸을 은장도로 쑤셔대는 상상이 멈추지 않았다. 사람들은 내가 살인자라는 것을 금방 잊었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그 남자가 나를 찾아왔다. 나는 한동안 벙 쪄 있었다. "이 개새끼!" 알 수 없는 울분이 터져나와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내 뒤에 있었다. 방금까지 앞에 있었는데? 몸을 돌려 그를 보자 그의 손에 내 은장도가 들려 있었다. 그의 눈을 처음 봤다. 얼어붙을 듯한 안광에 피부는 티 하나 없이 깨끗했다. 여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두번째 손님이다. 생각 있나? 열배." 그의 말은 간단하면서 핵심적이었다. 열배...한 번 몫의 열배면 일주일은 그 짓거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 "자신이 없는데." "간단한 기술을 알려주지." 그는 이틀 동안 혈 짚는 법과 행동가지로 상대방의 정신을 빼놓는 기술을 알려줬다. 익히는 데에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는 내가 소질이 있다고 지나가듯이 말했다. 생리혈을 잘 닦고, 향수를 비롯한 어떤 화장도 하지 말라고 했다. 물로만 몸을 씻고 옷을 항상 햇볕에 말리라고 했다. 어떠한 냄새도, 심지어 담배 냄새조차 나지 않게 하라고 했다. 두번째 살인은 어렵지 않게 성사되었다. 다음 1년동안 총 다섯번의 의뢰를 받았다. 나는 방과 화장실이 딸린 집으로 이사했고, 마을 사람들은 내가 살인자라는 사실을 완전히 잊었다. 그를 처음 만난 지 딱 2년 되는 날이었다. 그는 그날 의뢰를 하지 않았다. 대신 질문 하나를 남겼다. "마스쿼레이드라는 단체를 알고 있을지 모르겠군." *** 달이 어스푸름하게 빛날 때 쯤 눈을 떴다. 쪽지는 사라져 있었고 필기체로 휘갈겨 쓴 양피지 한조각과 고급 인주로 마감된 봉투 하나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데어세크의 연회장. 전원 살상할 것. 불친절하기 짝이 없는 양피지 조각과는 달리 봉투에는 화려하고 고상한 초대장이 한장 있었다. 작업복 위에 드레스를 입어야 하나. 연회장은 영 내 스타일이 아닌데. 일주일간의 준비를 마치고 연회장을 찾았을 땐 분위기가 이미 무르익어 있었다. 문지기 조차 취해 있어서 단검 하나를 숨겨서 들어갈 수 있었다. 드레스에 프릴이 과하게 달린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연회장 안은 갖은 노랫소리와 떠드는 소리로 시끄러웠다. 소리 사이들을 비집고 들어가듯이 주변을 살핀다. 연회장은 하나의 큰 홀 형태였고 양 옆으로 계단이 나 있어서 테라스와 연결되어 있었다. 테라스는 조금 길게 내어 1층을 바로 내려다 볼 수 있게 해 놓았고, 데어세크는 그곳에서 흑요정 인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검붉은 그의 얼굴을 보아 굳이 그에게 말을 붙일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천장에는 거대한 샹들리에가 있었고 그 외에 조각품이나 음식들, 분주한 웨이터들의 움직임 빼고는 아무것도 없는 호쾌한 연회장이었다. 광원은 각 기둥마다 있었고, 시야를 모두 차단하기는 조금 힘들 것 같았다. 한명 한명 소리없이 처리해야 한다. 작업을 시작했다. "웨이터, 잠깐 칼좀 주시겠어요. 고기를 먹고 싶은데 조금 질겨서." "제가 잘라드리겠습니다." "괜찮습니다. 바쁘실텐데." 2층 테라스로 올라간다. 샹들리에는 두꺼운 쇠사슬로 묶여있었다. 끊기만 하면 내가 잘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테라스엔 데어세크를 비롯한 열명 정도의 사람이 있었고, 모두 건물 안에 있었다. 밖으로 이어진 테라스에는 아무도 없었다. 밖으로 나왔다. 준비는 충분한가? 단검 하나와 나이프, 작업복에는 질긴 끈 한다발을 묶어놓았다. "어디에서 오셨죠? 달밤에 슬픔이 빛이 나는군요." 단정하게 보이는 남자 하나가 접근해왔다. 나는 처연하게 웃었다. 슬픔이 빛난다니. 무슨 헛소린지. "슬픔이 빛날 수도 있군요. 마스쿼레이드에서 왔습니다." "예?" "농담이에요." 호호, 하고 웃었다. 남자는 하하하, 하고 웃었다. 그의 웃음이 멎을 때 그는 목에서 피를 쏟고 있다. 재빨리 단검을 빼내고 피가 뿜어져 나오지 못하게 손으로 막아 테라스 밖으로 던졌다. 피냄새가 났다. 연회가 시작되었다. 재빠르게 일을 처리해야 한다. 샹들리에를 지탱하는 쇠사슬의 앞에 나이프를 던져 꽂았다. 오래된 쇠사슬이 신경질적인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연회장의 모든 사람들이 소음의 근원지를 찾아 나설 때 던져진 단검은 나이프를 비틀었다. 단단한 것일 수록 의외로 쉽게 부서지는 법이다. 샹들리에가 떨어졌다. 저명한 마법사와 전사들이 모였다더니,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여러분, 죄송합니다. 사실 이 연회장이 조금 오래 된 건물이라...샹들리에를 수리한 지가 꽤 되었는데 이게 떨어져 버리는군요." 데어세크는 호쾌하게 웃으며 용서를 구했다. 분위기가 조금 웅성거렸다. 데어세크의 옆에 있던 사람이 그에게 귓속말을 했다. 어디선가 나이프가 날아와 샹들리에를 떨어뜨렸습니다. 작지만 정교한 움직임이었어요. 보통내기가 아닙니다. 데어세크의 안색이 굳었다. 나는 그 모든 장면을 1층에서 천천히 관찰한다. 샹들리에에 모든 이목이 집중되어있었다. 외곽부터 처리해야 한다. 벽 근처에 붙어있는 사람, 그들 중 모서리에 있는 사람이 세 사람. 그 근처에 있는 사람이 스무명 정도. 샹들리에 근처에 오십. 2층에 열명. 나머지 삼십명 정도는 산발되어있다. 모서리로 간다. 어딘가의 백작이라고 했던 사람이 잔을 만지작대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좋은 날에 갑자기 무슨 이변인지요." "그러게 말입니다...뭔가 날카로운 소리가 나는 걸 봐선 무언가 부딪힌것 같ㅡ" 죽음에는 소리가 없다. 그가 바닥에 쓰러지기 전에 맞은 편에 있는 사람의 목을 그어야 한다. 긋는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단검은 예리하게 동맥을 파고들어 피를 마셨다. 눈이 마주친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람 뒤에 있다. "사람이ㅡ" 말을 들을 필요는 없다. 빠르고 군더더기 없이 처리한다. 다섯 명 정도의 사람이 나를 인지했다. 그리고 다섯명이 동시에 피를 뿜었다. 두개골을 뚫고 심장을 찌르고 목 한가운데를 꿰뚫었다. 좋아, 시작이 훌륭하다. 이제 시끄러운 파티가 시작된다. 고함이 연회장을 가득 채웠다. 여덟개의 시체는 군중의 분노를 일으켰다. 나는 그 분노를 입고 붉은 색으로 변한 드레스를 찢는다. 끈을 빼 샹들리에 앞에 있던 사람의 목을 걸어 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났고, 목이 걸린 사람은 먹던 마카롱을 토하며 쓰러졌다. 샹들리에의 쇠사줄에 손이 닿았을 땐 세명의 전사가 나를 덮쳐오고 있었다. 나는 낮은 자세로 그들을 보았고 그들은 예리한 칼로 빠르게 내 품을 파고들었다. 옆구리를 스치는 칼날을 느끼면서 쇠사줄을 쥔다. 그대로 한 자루의 칼을 낚아채며 한 사람의 머리를 낚아채었다. 피가 뿜어져 나왔다. 아비규환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냉정하고 험악한 분위기를 원한 건 아니었는데. 군중들은 제각기 칼과 스태프를 꺼내들고 고함을 질렀다. 피냄새가 진동했다. 나는 정말 가슴이 뛰는 것을 주체하지 못해서 웃고 말았다. 갖가지 마법들이 연회장을 불태웠고 서로가 서로의 배와 손발을 잘랐다. 나는 그들 사이에서 왈츠를 추었고, 그들은 서로 죽이기에 바빴다. 분노한 전사가 소리처럼 빠르게 돌진했다, 그래서 나는 빛처럼 빠르게 그의 눈을 뽑았다. 심장을 뽑고 성기를 뽑고 갈비뼈를 꺼내 옆사람의 귀를 뚫었다. 혈화가 난무했다. 몇 개의 갈비뼈가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고 살점들은 힘없이 비린내를 뿜고 있었다. 도망치는 사람에게 단검을 던지고 쇠사슬로 다리를 묶어 내게로 끌고 왔다. 그 쯤 되자 군중은 겁에 질려 너도나도 도망가려 하고 있었다. 히힉, 힉, 히히힉, 하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내가 내는 건가? 모르겠다. 나는 그쯤엔 피바람을 타고 그들 사이를 오가며 절망의 그림자를 입혀주고 있었으니까. *** 사람들이 '그림자' 들을 '악몽'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는 그것을 칸나에게서 들었다. 칸나는 작고 성실한 내 친구다. 그리고 작고 성실한 내 친구 칸나는 자신의 친구라고 믿고 있는 '악몽'에게 '악몽'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데어세크는 두 눈과 심장이 뽑힌 채 죽었다. 총 104명이 죽었다고 했다. 음유시인 '체이빌'이 그 살육극의 유일한 생존자여서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고 있는데 칸나는 그 가련하고 고운 체이빌이 그런 잔인한 학살극을 자행했을 리는 만무하다고 열변을 토했다. "맞아, 어떻게 그런 사람이 그런 끔찍한 짓을 하겠어..." 나는 짐짓 소름끼치는 표정을 하고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느라 혼났다. -- 야밤에 심심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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